결혼을 일찍 하여 아이 셋을 둔 막 30 대 가 된
수야는 1960년대에는 대구 섬유경기가 좋은 때라
실장사해서 집 칸이나 징기고... 좀 살았다.
그 때 수야 친정 모친이... 칠곡서 송곳 꼿을 땅도 없어... 남의 땅 빌어 농사짓고 사는
가난에 허덕이는“언니 순이” 쫌 살려주라 했다.그 때 언니 네도 애가 넷 딸린 처지였다.
살려주는 방법은 간단했다.
지금은 칠곡이 발전 되어 어렁처렁 하지만... 1960년 당시는 행핀 없었다.
그냥 촌구석이다.
1990년도 중국에 처음 가니 북경 변두리와 같더라.
칠곡 한 중간에 마르지 않는 물웅덩이가 있는 반듯한 밭 2000평을 사주는 것이었다.
물론 등기는 수야 이름으로 하고..
도시에 살던 수야는 밭이 필요 없었다.
그 당시 , 도시서는 생활기반을 염두로 둔.... 점방 달린 길강가 집을 마련하는 것이
최상의 목표였다. 수야도 그걸 목표로 삼는 가운데.....
*그것은 지금도 목표인 분들이 많으실 걸요.....*
허나 연로하신 친정 모친의 간곡한 청을 거절하기 싫고
동기간의 우애도 있어야 될 것 같으고 ....하여 밭을 매매했고,
별 이상이 없는 한!
언니 순이가 무상으로 부쳐 먹기로 해드렸다.
매매당시 ....구두 조건이 뭐냐면
사업을 하는 수야는 언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수야가 필요시,
돌려주는 것을 조건으로 한터다. 보증인이 친정 모친이시니 .....
1970년대 대구 섬유산업이 사양화 되기 시작 하면서...수야는 부도를 맞고 사업이 망했다.
수야네 애들도 학교에 근근히 보내게 됐다.
길거리 나 앉을 판이었다.
칠곡 밭에 포도농사라도 시작하고 싶었다.
밭을 돌려 달라했다. .택도 없었다.
그즈음 토지법이 바뀌면서...
도시에 있는 논 밭주인은 그 소유를 인정하지 않는 법이 생긴 것이다.
농사를 실제로 짓는 사람만이 농지를 취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수야 친정모친이 나서셔서 ...언니 순이에게.
이제는..
칠곡에서 도시 근교 농작물( 상추, 오이 토마토, 배추 , 무우 파, 정구지 등의 밭작물)로
집도 장만하고 논도 밭도 사고..
어느 정도 기반을 잡은 칠곡 동네 유지도 되었으니 ..
이제 그만 밭을
형편이 어려운 수야에게 밭을 돌려주라고 했으나 ...거절했다.
그 길로 친정모친은 돌아가셨다.
돌아가시면서 유언이 된 한마디! 순이와 순이 남편에게
“이 도둑 년 놈들아!” 였다.
그즈음 칠곡 소식을 잘 아는 분이 일부러 수야에게 오셨다.
수야 밭 한가운데에 길이 났는 데.......보상금 얼마 받았느냐고...
밭주인에게 길이 난데 도 알려 주지도 않은 것이다.
칠곡 군청에 갔다.
어찌해서 밭주인이 허락을 안했는데 길이 날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그런데 밭주인 수야의 이름으로...
수야가 허락을 한 것으로 도장이 이미 찍혀져 있었고
그 길에 대한 보상금도 벌써 언니 순이가 가로채 간 후 였다.
순이 언니에게 와서 확인하니..........순이 남편 즉 수야 형부가 장난을 친 것이다.
토지 수용 관계 공무원이 수야형부에게
"토지 대장의 나타나 있는 원주인인 수야가 누구냐"고 물으니
“집에서는 자기 마누라 순이를 ...호적이름으로는 수야라 한다" 하며
관계 공무원들을 속여서,
밭 한 중간에 ...길이 날 수 있겠금 허락 하고... 보상금을 가로 챈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기들은... 그 밭을 죽었으면 죽었지 그 밭을 내 놓을 맘이 없고...
처제인 수야 쪽에서 억지로 법으로 한다면 자기들도 바뀐 토지법에 따라,
자기 꺼 라며 대든다 했다.
그리고
보상금의 극히 일부를 쥐어주며.......
밭을 근 15. 6년 전 매매된 그 값에 자기들에게 넘겨라 하여...... 울며 겨자 먹기로...
똥값에 넘겨줬다.
그 날 수야가 분해 많이 울었다한다. 그 당시 수야 형편이 너무 아무것도 없는 때라
더욱 슬펐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해....
여느 때 처럼 수야의 형부는
칠곡... 수야 눈물의 그 밭에서 난 작물을 트렉터에 가득 담아 실고
새벽 3시에 팔달시장으로 채소를 넘기기로 하고 가던 길,
칠곡 태전교 못 밑치는 곳에서 마주오던 차를 피하려다
트렉터와 같이 강쪽으로 향한 언덕에서 굴러 떨어지는 추락사고가 크게 났다.
순이 남편 즉 수야 형부가 ......
뇌를 크게 다쳐 의식은 있어나 표현은 전혀 못하고. 눈 만 약간 뜰 수 있었다한다.
통증 신경은 다 살아 있어 느끼고 ,운동신경은 다 죽어서 상반신 ,하반신은 전혀 못쓰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즉 식물인간이나....의식은 있는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것 이렸다..
주사액이 안 들어가면 들어갈 때까지
환자가 고통을 호소하지 못하니까 ....될 때까지 함부로 처리하고
주사도 너무 많이 놓아야 되니, 종래는 식구들이 다 간호사가 되어 니도 나도
나서서 주사를 빼꼼 할 틈 없이 찔러 돼어 주사 바늘이 온 몸에 들어가야 되었다.
한번은 .....폐에 물이 체였는데.. 마취제도 한번 안 써주고....옆구리를 예사로 맨살을 뚫어..튜브를 꼿으니...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하던지...눈물과 대변이 한꺼번에 나오더라 했다.
한 일년을 동산병원 중환자실에 있다가...병원 측에서 ..더 이상 손 쓸 수가 없으니...퇴원해 집으로 모셔가라 하였다.
집에 와서는 .... 발가락 끝에서 처음에는 새파랗타가.... 검은 색으로 변하면서.
차차로 썩어 들어가면서..종아리, 허벅지, 엉덩이. 등짝 순으로...
손가락부터 팔뚝으로 어깨로, 심장 쪽으로 모아서 올라 왔다 한다.
살아있는 사람인데도 살 썩는 냄새가 동천을 하더란다.
얼굴도 거믓거믓 할 즈음
막판에 숨을 헐득이며.....동그랗케 심장만 남겨두고...... 썩어 들어갈 때까지 장장 5년이 걸렸다.
이 사건을 두고 ....
아직도 일부 칠곡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단다....전설같이
“지 어려울 때 살리 준... 그 처제!
그 처제 밭 ~ 도둑질로 뺏아서 ....그 밭에서 나오는 작물을 싣고 가다가
교통사고 당했다..........천벌 받은 것이다..“.라고
30년 세월이 지나니 ...다 꿈이런가 헛되다.
천벌도 사라지고 원수도 사라지고.....
지금은 칠곡의 제일 번화가의 땅이 된
칠곡의 그 수야 밭은
1980년대 들면서 평당 100만원이 되어 순식간에 20 억 짜리가 되었으나
그 20억원은 또 순식간에
순이네집 아들이 증권을 잘하는 통에 순식간에 날라 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