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풀려 지꺼리는 얘기 등등

[스크랩] 20번째 얘기.....작은방 여자

김씨할머님 2014. 9. 18. 18:55

 

우리 동네는 밭에 나가 일하는 아주머니분들이 많다.

이제는 그분들이 연세가 고령이라 나갈 수 없어도 젊은 분들이 동참 하지 않아 밭작물 수확에 먹구름이 드리운다.

주로 매천동  밭때기 사장님에 소속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 각종야채  밭때기 소속사.......파밭이 주종, 정구지 밭, 미나리 깡, 고추밭, 마늘밭, 양파 밭 등)

일년 계속 간다면 일당 4만원에서 7만원선..

어쩌다 한 번 따라나서면 작물과 작업량 따라 7만원에서10만원까지 받는다.)

밭때기 사장님들은 자기 농작물을 직접 지을 때도 있고

 남의 작물을 밭때기로 선매도 하는 경우가 주로 많다.

우리 동네는 서로 도와 일거리가 있다 없다 정보 교환을 잘한다.

그래서 멀리 이사 가더라도 다시 들어와 사는 수가 허다하다.


1980년경 .. 같이 정구지 밭에 나가 일하는 유씨 아주머니댁  와 김씨 아주머님 이 사돈을 맺었다.

유씨 댁 외아들 유찬씨가 결혼 한지 6달 밖에 안됐는데......새색시가 견디다 견디다~

이 집을 더러버서~ 나가버렸다.

같은 친구 사돈끼리 대판 지기  큰싸움 났다.

 몇 십년 우정이 원수가 돼서 같은 밭때기 소속사에서 갈라섰다.


 이유인 즉 슨..

유씨댁 아들 유찬이가 문간채 셋방 사는 23 세살된 선이와  불륜의 관계를 맺은 지 한 일년 된 터다.

  그 당시 선이는 문경 세제 어느 국민 학교 졸업하고 20살 갓 되어

그 곳 똑같이 배우지 못한  남자와 결혼해 2살, 3살 된 딸아이 둘을 데리고

 

문경 산골짝이 ......시외 버스에서 내려서도 걸어서  20리 되는 동리서,

 생전 처음으로 도회지인 이곳 대구 비산동에 막 온 터였다.

애들 아빠는 막노동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깊은 산골에서 살다가 ....난생처음

 대학 나온 젊은 미남 집주인을 보니 세상이 달라보였는지.....

유찬씨와 선이 두 사람이 닮은 거는 인정한다.

별시리 둘 다 눈이 크다. 얼굴뼈가 억세고...같은 분위기가 대번 통했나?

 둘 다 첫 눈에 뽕 갔었는지...그 집 문간채 선이가 세 들어 산지 며칠 안 돼 일을 저질렀다.


* 필자는 예전부터 이런 말은 들어오던 터다....학교를 별반 안나온 시골여자가 정조관념이 쫌 약하다고~.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오해 없어시길~


 유찬씨는 해병대 출신답게 거침없이 선이를 제 꺼로 만들었다.

유찬씨 해병대 나온 것 온 동네 다 안다. 싸울 때 마다 군필 했다고 떠든다.

요새는 빈도는 예전보단 훨씬 못하지만 .....그래도~ 지금도 동네가 왁자지껄하면 어김없이 유찬씨다.

저녁 늦게 까지 식당서 일한  선이 차가 올 때 쯤 이면 미친다.

선이 차 주차 칸에 다른 사람 차가 주차 되어 있어 면

그 차를 예사로 부셔버린다.

경찰 출동이 일년에 몇 차례나 된다

좋은 점도 있다 그 집 주차 칸 에는 어느 차도 주차 안한다..

우리 동네 사정모르는 낯선 이가 우야다 한번 될까~


근 30년 전 선이가 바람 피울 때.....남편이 밤에 잠든 것을 확인하고 .....손바닥이 남편 얼굴 위에서 왔다 갔다 하는 거..........큰방 주인아저씨, 유찬씨 한 테 간단다.


그러다 반 년 뒤 큰방 아저씨, 유찬씨가  김씨 아주머니댁 따님과 혼인을 한 것이다.

김씨댁 따님 , 즉 새색시가 맛이 없었나!

문간채 셋방 선이를 결혼 하고도 계속 찾았다

.

꼬리가 길면 밣히제!

새색시가 자기 나름대로 시모님께, 친정모께 알리고 그들이 고쳐 주길 바라나.....

그녀 혼자의 희망사항 일뿐.....한번 불 붓은 연정은 식을 줄을 모른다.

종래는 선이 남편도 알고 ...죽인다. 살린다....식칼이 왔다 갔다 하고...선이 친정엄마도 문경산골서 오셨다.

선이 엄마는 그래도 옳은 분이신지...선이 보고“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자결하라 ”말씀하셨단다.

집안 전체서 분란이 일어나자..

..선이가 떠날라 했다 .

 그러자  유찬씨 수면제 소복히 먹고 자살시도 했다.

 자살미수에 그쳣다......당연지사. 우세만 들입다 하고


그때 동산병원에 누워 있는 유찬씨보고 선이는 이렇케 생각했단다.

내가 떠나면 저 사람이 죽겠다. 내 하나 희생하고~  저 사람을 살리자!     왕 高潔之心?


그래서  4살 안된 두 딸과 산골고향서 백년가약 맺은 남편 , 살던 문간  셋방에 버리고.....

유찬씨랑 그길로 도망갔다.


본 남편이 제 기집, 선이를  내놓키 전에는 그 집에서 절대 못나간다고

유찬 모친에게 왁왁 달라 들고.....그것도 세월이 지나니 소용 없는 짓!


유찬씨 객지로 도망가보니 기반 없는 데서 우에사노~

6년을 걸배이 같이 살았단다. 그 차중에 애기 두 배 놓고...

이번에는 아들이 먼저 그 다음 딸!

살다살다 못살아 대구 서구청 뒤, 그러니까 시집 돈 얻어 쓸려고 이 근방까지 와서 살았다.

유찬씨 본디는 철공기술자 였으나  성질이 과격해, 남의 밑에는 못있는다.

지 철공소 차렷으나... 털어 먹었다.

이 차저차 유씨댁 아주머님 밭에 나가 번 돈 다 없애고 ...지금  80살 먹은 유씨 아주머님 쌈지돈 노리고

선이가  남의 식당 설걷이 하여 번 돈 으로 살아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까  ..22.3년전...  선이 본 남편이 본디 살던  셋방(이제는 선이 시집이 됐지만)에서 철수 하는 것을 보고

그 집에 다시금 들어와  한동안 살다.

유씨 아주머님 ... 동네보기 넘사 서러운지

이사 간다는 게....... 바로 그 집에서 딱  “걸어 오분 거리.”


나 같으면 아예 이 동리를 떠나겠두만.....

유씨 아주머님 기반이 “밭작물 수확 품노동” 이어선지 멀리 이사를 못가시네.


남의 흉 사흘이라지만 ....사건이 사건인지라

우리 동네는 그 내외간 지나가면 아직도 수군 그리네....



 


 



출처 : 대구약사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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