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제일 큰 이모님이 60여 년 전, 경주 율동 김진사댁 김씨 문중(가명)에 시집가셨다.
대구에 오시면 꼭 들르는 댁이 있다!
시집 쪽에서는 아주 가까운 인척분이신가 보다
동촌 김**씨댁!
그 댁은 경주 율동 ... 김씨 그 쪽 집안에서는 삼성 이병철 회장 정도 되는 위치셨다.
큰 이모님이 우리 집에 들러 꼭 그 댁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일본에서 직조 계통을 직수입하여 가공 처리하여 다시 일본으로 보내는 경상도 총판?
머~ 그런 것 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랑 동갑인 그 집안 공주님 급의 장녀이야기도 ...
어릴 적부터 자주 들으니 괜히 궁금하고 어떤 앨까?
1970년도 당시 입시제도는 현재와 다르다. 그 당시는 남녀공학 없었다.
시험을 쳐서 원하는 학교에 가야 되었다.
그 당시 대구에는 여자고등학교가
1차는 경북여자고등학교 , 성명여자고등 등이고
2차는 대구여자 고등학교 등이 있었다.
1차 경북여자 고등학교 떨어진 학생이, 2차인 대구 여자 고등학교에 몰린다.
대구 제일 여자 중학교 졸업한 나는
1972년, 1차에 떨어져 2차인 대구여고에 가게 됐다.
그 학교서 김씨 집안 공주님 (가명 숙이)를 보게 됐다.
대구 여고 학생들이 수군 그렸다.
그 당시 경북여중에서 왠만하면 경북여고로 다 진학했다.
근데 숙이는 경북여중 들어올 때도 뒷구멍으로 들어오고 (기부입학).
공부를 너무 못해 경북여고에서는 안된다 하여
하는 수없이 대구여고에도 기부 입학했다고.......일리는 있었다 .
입학식 다 끝나고 느닷없이 나타난 걸로 기억된다.
교무실 앞에 딱 세워논 숙이 아빠의 빨간 자가용이 있고 나서..
.
그리고 그 집에만 컴퓨터가 있어 모든 성적처리를 선생님들이 그 집에 가서 처리 하고
요리집에도 가서 후히 대접받았다고 선생님 한분이 자랑삼아 얘기해 주시네.
그 시절도 돈이 참 잘 통하더라.
학업에서는 숙이는 소문난 꼴등이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줄은 알지만... 한번도 같은 반이 된 적은 없었다.
지는 인문계반 나는 자연계반이 이었고.....한 학년에 근500명 되었어 니....못 만날 수 밖 에
숙이를 만난 것은 고등학교 졸업하고 난 후다.
숙이는 대학은 못 갔다. 이젠 뒷구멍이 안 통하든지....
그 애 아빠가 대학 보낼 머리는 도저히 안 되겠다고 포기 묵었는지~
고등학교 친구들의 친구로 만났다.
숙이도 내 존재를 예전부터 알고 있었는지 일부러 내 옆에 앉았고..
일부러도 우리 집에 놀러왔고, 내가 필요한 거 는 예사로 내주었다.
어릴 때부터 가보고 싶었던 동촌의 숙이집에 가보게 됐다.
율동의 김씨 집안 네들은 대구 들렸다하면, 모두 가서 그냥 묵고 자는 그 집을 ~
숙이네 집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저택이다.
지금도 그리 큰 규모의 이층 일반 가정집은 별 반 없지 싶다.
1층 부엌 식모 따로 2층 부엌 식모 따로...요새는 도우미 아줌마라 하죠
한 중간에 긴 복도가 놓여져 양쪽으로 방을 만든 겹집이었다.
실컷 놀다나온 숙이 방을 못 찾아 동생들 방을 기웃거리질 안나~ 좌우지간 컷다!
25살 된 숙이 시집간다고 나한테 알리러 왔다.
근데 그 결혼이 억지스럽다.
약혼자가 어떤 사람이냐 물으니 지방명문대 박사과정 중인 강사란다.
시어머니 되실 분은 칠성시장 난전의 채소 파는 아줌마로 청상과부며,
혼자서 어렵게! 어렵게! 하나 아들 뒷바라지하고,
집도 남의 집 세사는 가난한 분들이시란다..
숙이 고등학교 때 가정교사로 김씨 저택에 들어왔는데......지금은 동생들 가정교사로 이 집에 출입하시는 분으로.
사랑하는 사이도 아니라 했다....
숙이는 ..
그니 약혼자도 논문 쓴다고 바쁘다고 하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그 당시 대학원생인 나랑 비슷하다고....
지 딴엔 내 처지를 약간 이해 한다는 듯
“니도 많이 바쁘제 ” 그런 말도 슬쩍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난 후 줄 곧 집안 살림만 살고 있는 터 인지라 .
숙이는 대학원에 다니는 내가 부러웠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엄청난 부자 아빠를 둔 지가 오랜 세월 부러웠는데.....
그러니까 그배우자가 지한테는 맞지도 않는 옷을 입는 꼴로 보였다.
나에게
숙이는 그래 큰 부잣집인데도, 공부가 뭔지 ...기가 죽었고, 교만은 전혀 없었고
어린 데도 인심이 참 좋은 후한 어진 사람이고 엄마 대신 큰살림 지가 다 살고
(엄마는 화투만 치더라..내가 본 게 맞았는지... 종래 가서도 그 화투 노름 때문에...
그 큰살림이 기울었다나.....그 집안에서는 그러두만!)
어지간해서 화도 잘 안내고 이해성이 넓다.
민첩하게는 안보였다. 잔꾀가 있어 보이지도 않고..
“너 여태까지 어떤 남자가 있다고 말한 적도 없잖아!
“ 왜 이렇게 급하게 결혼을 하는 데?”
“그리고 너~! 그 남자분이랑은 안 맞아! 형편이 웬만큼은 비슷해야지!
너 네 아빠는 왜 허락 하신 데?“
이렇게 묻는 나에게 숙이 석연찮게 말을 잇는데........그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게 비참한 결혼의 서곡이었는지.....
대략의 그니 말로니 어릴 때부터 본 존경하는 가정교사 선생님이라 경계를 안 해서
집안에서 겁탈 당했단다.
그니 생각으로는 어리석은 자기와 계획적으로 결혼 하려고 그런 행동을 취한 듯했다 했다.
바로 임신이 되자 아빠가 결혼을 허락 하셨다네.
숙이네 집에서는 공부에 포은지신 분들이라
*참고로 그니 남동생 두 사람도 공부는 참 못해요*
똑똑한 박사사위 본다고
숙이 지참금으로 아파트 방 셋짜리 한 채 사주고..살림도 바리바리 해주고 했다.
공주님 딸이 결혼생활에 물질적으로 부족한 점이 많을 것으로 여겨
아파트는 친정 집 가까운 곳, 방촌 쪽으로 걸어서 약 5분 정도 되는 거리에 새건물로 마련했다.
그때 나온 이야기가 숙이를 바로 곁에 두고 싶은데...아파트를 새건물을 찾다 보니 5분 거리로 떨어진 걸로 안다.
청상과부 시어머니도 모시기로 하고
나는 그 결혼에 못 참석했다.
두 분 이모님들과 외숙모님의 대화에서 그날 상황은 들었다
아주 이상한 광경을 보쎴단다!
혼주석의 시어머님이 그리 슬피 우시더란다..
처음에는 신랑 되는 이 , 아버지가 이런 좋은 자리를 함께 못해서 한이 되어 그러시나?
여겼는데..... 화장실에서도 대성 통곡하시면서 우시더란다.
옆에서 보매, 종래에는 이상한 기분이 들고 불쾌하더란다.
하여튼
그 날 그 시어머님의 지나친 울음은 잔치 다녀온 사람들의 입에 당분간 오르내렸다.
나의 이모님들은 말씀을 이렇게 하셨다
“ 지 서방이 장가가나~ 지 아들이 장가가지!
내 살다 살다 아들 장가보내면서 그렇게 마이 우는 시어마시 첨 봤다.”
숙이 결혼하고 얼마 안 있어, 숙이 큰 남동생이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됐다.
비행장에 갈라고 큰 가방 들고 나서는 막 나서는데
친정집에 숙이 시어머니가 들이닥쳤단다.
그리고 유학 갈려는 큰 동생의 가방든 손을 물더란다.
.......개도 아닌 사람이.....더군다나 사돈네 총각 손을.
얼마나 이 집을 우습게 봤어 면..........이러면서 물더라네!
"공부도 못하는 것들이~ 무슨 유학이 당하노? "
" 유학을 가도... 너거 자형이 가야지 ! "
안 사돈 , 즉 숙이 친정모친 한테도
“결혼 전에 유학도 보내 준다 케서... 내 똑똑한 박사 아들을
너그 집 딸~ 반푼이 같은 거 한테 줬지!“
너그 아들만 혼자 못 간다. 절대 못 간다!
내 아들 유학시키기 전에도 절대 못간다!"
오랫동안 그 집 가정교사를 해서 이집 내막도 너무 잘 알고.. 공부를 쫌 못한다하여
자기들 끼리 어시 없신여겨 오던 사람들인 갑다....
사람이 살아나가는 데는 ...공부가 다는 절대 아닌 데......쯥
할 수 없이 동생은 손에 붕대를 감고 비행기에 올라야만 했다..
들어는 봤나요! 이런 해괴한 상황을~
이런 같잖은 일이 일어나는 것 하나만 봐도~! 숙이 시집 더럽븐 데 걸렸지! 안 봐도 뻔했겠지요!
소소한 것 다 치우고 아주 엄청시런 사건 하나만
결혼 임시 임신한 애기가 태어나고 ... 돌 정도 됐을 때다 .
애기는 시어머니 방에서 재웠다.
밤 중에 애기 울음소리에 깼다.
눈을 뜨니 ... 옆에 자던 남편이 안보였다네.
또 시어머니가 옆에 계서서 애기를 달게 주실 줄 알았다.
근데 아무리 기다려도 애기가 울음 그치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일어나 할머니 방에 들어갔다.
애기만 혼자서 자지르지게 우내 !
애기를 달게 놓고 시어머님이 어디 계신지 살펴봤다. 화장실 , 부엌등을 ....
서재! 그 곳에 계실 꺼라고 생각도 안들지만.. 일단 어른이 안보이니...
작은방 남편의 서재 ! 무심코 문을 열었다!
봐서는 안 되는걸 보고 말았다.
남편과 시어머님이 성관계를 하고 계신 것이었다.
서로들 놀라 쳐다봤다.
그들의 당황하던 눈빛이. 곧 살기가 등등한 눈빛으로 변하는 것을 보는 찰라!
시어머니가
“저 년을 죽여야 한다.”는 외마디 소리
숙이가 달아나야 한다고 생각은 드나, 몸이 굳어 꼼짝이 안 되더란다!
잡히면 그 들 손에 죽임을 당할 것 같았다.......도망은 쳐야 하는데.
어떻게 해서 아파트 문을 열고 나왔는지 ....어떻케 달렸는지..
정말 자기를 잡아 죽여 없앨 것 같은 남편과 한밤 중에 ...아슬아슬 추격전이 벌어 졌단다.
동촌 에서 방촌 사이 몇 백 미터 아스팔트길을.... 걸음아 날 살려라....뛰었다.
죽여야만 비밀이 유지 될 것 같았는지..... 악착같이 잡으러 오는 남편 손아귀에서 벗어나고자
걸어서 평상시 5분 거리가.. 친정에 오는 그 거리가..... 그렇케 아득하고 멀더란다.
한밤중에 지나가는 차에 도움도 청 할 겨를도 없고
극도의 공포심으로 죽기 살기로 그냥 달렸단다.
친정집에 도착해서 초인종을 누를 즈음
이제는 끝났다! 싶었는지 남편이 저만치서 그냥 보더라내!
죽어라 는 법은 없었는지
아빠가 맨 먼저 달려 나오시고....친정 식구들이 우 나와서 보호해 들어갔는데...
딸애의 넋 빠진 모습을 보고 전 식구들이 혼비백산....
맨발 전체가 피투성이, 자갈돌이 박혀 있음도 모르고 발바닥 살이 다 너들 너들 하더란다.
남편에게서 빠져나오려다 낚아채여 찟어진 잠옷에, 머리는 산발, 정신은 다 나갔고,
딸애를 들여다보고 있는 데......초인종 소리가 나면서 사위 목소리가 들리네.
사태를 짐작한 아빠가 밝은 날 다시오라고..
사위를 문도 열어 주도 않고 그냥 보냈다네.
그날 밤 아빠가 찬찬히 자초지종을 듣고서는 바로 이혼 시켰다.
시집에서는 며느리가 좀 어리숙한 점을 이용
애기 낳은 후, 정신이 이상이 온 것 같다고 슬며시 미친 년 으로 밀어 부치더라나 !
그래서 숙이 아빠 “
“내 딸 애가 세상물정 몰라 어리숙은 것은 맞으나! 정신이 돈 사람은 절대 아니다.
내 딸 재산 돌려 달라 말 안 할 태니 이혼이나 해 달라.“
그래서 이혼 할 수 있었다.
얼마간 친정집에 머무르다~
숙이 사정이랑 비슷한 대신동 포목점 크게 하는 집에
재차 시집갔는 데...그 집이 재산이 늘면서. 애기도 낳고
또 친정집에서처럼 잘 사는 집 안방마님이 되더라고 친척들이 알려주네.
숙이가 친정집에서 결혼으로 인해 나오고
그 집도 아빠가 돌아가시면서 재물이 풍지 박산 나고 하여
김씨집안에서는 큰 딸이 재물 복이 많은 아~ 였나? 하고 점바치 같은 소리나 하고
그리고 옛날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도망간 날부터 동네 소문이 쫙 나서 그 곳에 못살고
어디 이사 가서 살다가 한 오년 뒤 목매 자살하고
똑똑한 박사님은 어디 교직에 계신다는 것까지만 들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