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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90번 째 얘기....긴병엔 효자가 없다.(1)

김씨할머님 2014. 9. 18. 20:53

  1995년 어느 날

오늘도 삐뽀차가 내 앞을 스쳐 급히 골목길을 들어선다.

근 일년 전부터 한달에 한 번 꼴로 어느 특정한 집을 향한다.

사람들은 웅성인다.

오늘 또~.......그 판피린 할머님 댁 이지?


* 판피린 할머님은 80초의 서글서글한 분으로, 같이 해로하시는 80줄 할아버지도 아주 정정한 분이셨다. 슬하에 7 남매를 두셨다. 다 출가 시키고 이 곳엔 내외 두 분만 사셨다.

당신의 표현에 따르면 젊은 시절부터 판피린을 하도 많이 드셔.....몇 십 도락구분을 복용했을 꺼 라 했다.

 판리린이 당신과자라고도 하고, 그 댁에 방문하는 사람들의 손에는 꼭 판피린을 들고 방문했다. 다른 선물 필요 없다. 판피린 1통이면~ 만사 오케이였다.


처음 이 엠브란스 차가 삐뽀소리 (*삐뽀! 삐뽀!.....나 죽는다! 나 죽는다!)를 내며 이 댁에

나타나기 시작을 때 는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던 할머님 소생 , 7 남매들이 왁~짝!

“아이고~ 어무이요! 이 일을 우야꼬”꼬 온통 난리도 아니었다. 혹여 임종 못  볼까봐 하여?

한 달 뒤에 일어난  두 번째 삐뽀차가 출동 될 때까지는 7 남매가

 그래도 놀래 주고 모여 줬었다.


근데 한 달 간격으로 3번째, 4번째......... 이 삐뽀차의 출동 횟수가 거듭 되자.....

형제지간끼리 서로 “ 니가 가볼래....나는 좀 일이 있다!”

어느 듯 면역력이 생겼는지....정신적 여유를 갖게 됐는지....

어머님의 급박한 병환에도 멀리서 한번 댕겨 옴이 힘에 많이 부치나 보다.


열 번이상의 급박한 상황이 일년내 벌어지자.....나중엔 서울서 장남만 왔다 갔다 한다.

어느 날  50을 훌 넘긴 장남 아저씨랑 내가 마주 앉았다.

고달프게 장거리 운전을 하고 내려와서 무사한 어머님 얼굴을 뵙고 ..잠깐 혹은 . 며칠 머물렀다가...

서울로 되 돌아가야 하는데....

도시생활이 그렇듯, 객지로 간지 오래되어 동리 아는 이들이 없고, 말 붙여 볼 이가 없어,

몇 번 약국에 들러 봤고. ...또 부모님들께서 우리 약국 단골이시라고 말씀하셨다고...하여

나를 아는 얼굴이라고 나를 붙들고 하소연한다.

 

참 말로 죽을 지경이라고.....7남매가 되나 각자 외지에서 삷을 영위하니...한번 몸빼기가 수월 찮은 모양이라고...자신은 장남이라 소임을 다 할려 한다고.......아무리 회사의 중견 간부라 하나

자꾸 회사 업무를 내 팽게치고 나 올려니,  윗사람 아랫사람들 한테 이만 저만 눈치가 보이는게 아니라했다.


이러구로 일년이 넘었다,

이젠 삐뽀차가 아니라 .....영구차다.

사람들이 모여 말한다.

이제 판피린 함머님 가시나보다....아니었다!

생떼같던 할아버님의 초상 이었다.

사람들이 또 말한다.

할머님 병수발에 견디다 견디다....할아버님이 무슨 맘을 먹어셨는지....곡기를 일부러 끊어시더란다. 

 말하자면 굶어 스스로 죽음을 맞이 하셨는 경우란다.

할아버지 돌아 가시고 한 일년 뒤 할머님이 돌아가셨다.

참으로 긴병엔 효자가 없다....

출처 : 대구약사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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