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풀려 지꺼리는 얘기 등등

[스크랩] 68번째 얘기

김씨할머님 2014. 9. 18.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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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면서 보아 온 사람 중에 가장 간이 큰 여인을 손꼽는다면...

10 여 년 전,

42살 겨우 되자 마자 죽은 한 동네 살던 숙이씨를 꼽겠다.

 

중학교가 최종 학력인 그니와 첫 대면은 1992년 약국 개설 하자 마자다.

 

그 당시,

그 집 구성원으로는

밭일 인력으로 맨 날 일 나가시는 시어머님(무식), 집에서 노시는

시아버님(무식). 고등학생 조카, 초등학생 자기 아이 2명,

철물 기술자 남편(국졸) ...도시 생활인 치곤 대식구인데도...

 

아이들의 소속 xx초등학교에, 그 곳에 애들이 입학 하자마자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부터 나가 서있는 등교 길 교통정리부터...학생들 점심 배식 담당 등등

모든 학내 어머니회 활동에 적극 참여하였고.

학부형으로서 너무 정열적으로 교내 일에 앞장서서 일하니.

종래는 돈 있어야 만 할 수 있다는 육성회장도..... 없는 형편에 무난하게 꿰차두만...

 

초등학교 어머니 봉사활동과 더불어

우리 동네 동사무소에서 추진하는 모든 봉사활동에도 적극 참여함과

동시에 서구청에 속한 봉사활동까지 발 벗고 나서는 것이었다.

 

이는....집에 절대 붙는 있는 가정 아주머니는 아닌 것이다.

길순이 인 것이다.

(* 길순이.....왠 만해선 집에 안 붙어 있고.....길에 많이 나서 돌아다니는

아주무이를 일컫는 말)

 

과히 그 꼴이 보기 좋친 않은 지

같은 학부형끼리도 그니가 지나치게 외부 단체에 봉사 활동적임을 탐탁찮게 여기며

“ 무슨 수로 시부모님을 모시는 보통 가정주부가.....지 살림은 내 팽개치고

저렇듯 무료 봉사의 외부 활동을 할 수 있는 냐“ 며 의아해 하더라!

 

얼마나 활동적이었어면 ~

서구청에서 최다빈도 모범 봉사 활동시민으로 상을 다 타고,

상금을 금일봉.... 받았겠노!

 

내가 간이 큰 여자라 한 것은

 

어느 여름 밤에

그 집안에 웃대 할아버지 제사가 들었다.( 나중엔 지 제사 날이 되었지만!)

근데, 그날 새벽 4시에 밭일을 떠나 저녁 8시에야 겨우 집에 도착한

그 댁 시어머님께서 급히 장에 나가신다.

제삿장을 보러 가시는 것이다.

이 집이 큰 집이라 ....제관들은 이미 쓱쓱 모여 드는데......

 

 

(물론 그날 밤 12시경 , 제사가 끝나고 ......제관들 다 보내고 난 뒤..

시부모님과 엄청시리 크게 싸움이 벌어짐은 말할 것도 없다)

 

숙이씨가 하나도 준비를 안 하고 있는 것이다. 잊은 것은 결코 아니다.

며칠 전, 저거 서방하고 싸웠다고 내게 말했다.

“곧 있을 제사는 저거끼리 지내기나 말기나 ....나는 안 한다”

그러더니 참말로 ....준비 하나도 안했다.

나는 진심으로 놀랬다.

우에 감히....

남편과 싸운 거는 싸운 거래도.....남의 집 맏며느리가 되어서리...

 

그 니는 지가 중학교 나오고 시집 식구들이 좀 덜 배워 무식하고

수준이 없다 하며 아주 노골적으로 업수이 여겼다.

내가 볼 적시는...... 지도 그리 내세울 만한 학력도 아니구만.....

중학졸업이 그치로 큰 줄 처음 알았다.

 

  지는 어디나가 돈 한 푼 안 벌어와도...그렇게 굵게 묵더라!.

지는 수준있게 관공서 같은 데서 봉사 활동한다고 그렇게나 내세우고 ..

집안일은 신경도 별로 안 써면서.

개새끼는 주리끼고...오만 사치 다 시키데..

시어른들  드리기싫다고..

피자, 통닭은 애들과 따로 매점에서 저거끼리만 쉬시 쳐먹고..집에 들어 오두만~....

새벽에 밭일 나가시는 시어머님 도시락 한 번 챙겨주질 안 터라내.

새벽밥 직접 해 드시고 가셨다고 하더라....

숙이씨는 그러고도 남을 위인이었지...

 

70 넘은 늙은 부모님집에 저거 식구 다 들어와 한테 앵겨 붙어 뜯어먹고 살면서

 시건방지긴 한량없고,

집안에 내외간 큰소리가 나면, 어르신들이 몸을 피해 잠시 바깥에 나가는

거는 예사고...

이건 뭐~ 여간 머러캐이도 안 돼고.....

 

36살에 당뇨병이 들었다며 나와 의논 했다.

공복혈당수치 ≥ 160mg/dl 을 넘진 않았다.

체크할 때마다 높은 수치를 나타낸 적은 ...나는 목격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당뇨병이 발현되고, 2 년 후

작은 염증이 발가락에 나타나더니, 종래에는 발가락 괴사가 일어났다.

아무리 고단위 항생제를 투여해도...차도가 없었다. 끝장을 본다.

발가락을 절단한 것이다.

이 걸로 끝이 아니다.

눈이 갑자기 나빠지기 시작했다.

1급 시각 장애 판정 받기까지 일 년이 채 안 걸렸을 것이다.

이제 겨우 39살 인데.......휜 지팡이 신세가 된 것이다.

 

곧바로 신장 기능 이상이 같이 들어 왔다.,

119가 몇 번 왔다 갔다 하면서..... 병원에 입원 했다가 ,

자가 치료하는 듯 하다가를 반복하더니

결국에는 종합병원에 입원했다.

 

문병 간 사람들이 6개월을 뇌사상태로 산소마스크를 하고,

눈알이 마치 시계추처럼 탁~탁~! 휘 번 듯 그리며,

퉁퉁 부을 대로 부어 마치 눈사람 같은 그니를 보고 ..

이제는 그만 놔 줘야 한다고 남편을 설득했다.

 

근데...그니의 남편은 젊어선지....

“애들 엄마가 숨을 쉬고 있으니 그럴 수 없다” 했다.

감동이다.

(근데...쫌....이상하다! 그리 정 좋은 내외간은 아니었는데.....)

 

 

그러다 병원이 발칵 뒤집어졌다.

입으로 코로 구더기가 실실 기어 나온 것이다.

배속이야 뭐야 다 부패가 되어 몸이 그 지경으로 붓고..

그 속에서 시가 실어, 구더기가 나온 것 이렸다.

병원에서 급하게 산소 호흡기를 제거하고 사망을 선고 했다 한다.

 

 

그래 살아설 적에 악독하던 숙이씨,

숙이씨 영구차 뒤를 따라가며 시어머님 우시네...

“가가 이래 세상 짧게 살다 갈라꼬~....

우리랑 정 띨라꼬~ 그래 표독시럽게 했던 갑다..“.이러시면서...

 

참~......

가짢은 것은 후에 들었는 데....

애들 엄마를 그 지경까지 둔 이유가

 

웃대 할배 제사랑 같이 제사 지낼려고....(* 안 번거러 울려고).

그 때까지 애들 아빠가 기다렸단다.

소귀의 목적은 달성 했는지.....웃 대 할배랑 같은 날......제사는 지내내.!

 

제삿날을 같이 만든 것이 무슨 크나 큰 업적인 양 우리한테 자랑하내...

 

참 ~ 덜 배웠다고 업신여김 당할 만하다.........(.속으로...........이캐야 되나?)

 

출처 : 대구약사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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